활동소식

제목 월남과 베트남 / 이태우 (한베진실상 수상작)
작성일자 2018-08-16

월남과 베트남 / 이태우 (한베진실상 수상작)



2005년 봄 실시한 베트남 전쟁 종전 30돌 맞이 수기공모 대회 [베트남 전쟁과 나] "미안해요 베트남, 미안해요 이라크, 사랑해요 아버지, 힘드셨조 어머니" 당선작을 싣습니다.
 

 


월남과 베트남



 

나와우리 이태우





1987년 여름이었든 것 같다. 그해는 무척 더운 여름이었다. 그날은 소나기가 내렸는지 마당의 풀잎들은 물기를 머금고 있었지만 시원하기보다는 후덥지근했었다. 나른한 여름 오후, 여름방학은 나에게는 해방의 시간이었다. 게으를 수 있을 만큼 게으르게 지내다 그것도 지겨워 마루의 한켠에 있는 아버지 책장을 뒤지며 이리저리 뒹구는 것이 그해 여름 내가 하는 유일한 소일거리였다. 책장에 꽃혀 있는 읽을만한 책을 뒤적거리다 이상한 슬라이드 사진첩을 발견하였다. 흑백의 사진이었지만 분명 아버지의 얼굴이었고 야자나무, 이국적 해안의 풍경도 보이는 것이 분명 한국은 아니었다. 신기한 풍경사진이 많았기 때문에 난 밖으로 난 창을 향해 사진 하나하나를 햇빛에 비춰보며 사진들을 감상했다.



그날 저녁 퇴근한 아버지와 저녁을 먹으면서 사진에 대해 궁금하여 아버지께 여쭈어 보았다. 아버지의 답변은 월남에서 찍은 사진이라는 것이었다. 평소 과묵하고 말씀 없으신 아버지가 웬일이시지 월남과 베트콩에 관해 말씀을 하시기 시작 하셨다. 그날 난 처음으로 아버지가 파병군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가난한 출신인 아버지께서는 군대에 입대 한 뒤 월남에 자원하여 전쟁터로 갔다고 하였다.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집안의 장남이신 당신께서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말이다. 월남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하여 드디어 전쟁에 관한 이야기로 옮아갔다. 베트콩들이 얼마나 잔인하였는지 웅덩이를 파고 그곳에다 대나무 죽창 같은 것을 꽂아 놓아 한국군인들을 빠뜨려서 죽였다. 또 한국군을 죽여서 정글의 나무에다 매달아 놓기까지 했다. 그런 일을 옆에서 보고 있으면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하시면서 식사자리에서는 어울리지 않은 전투의 참혹함을 이야기 하셨다. 전쟁의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전쟁영화속에 아버지가 있는 모습이 오버랩 되기 시작했다. 당시 까까머리 중학생인 나에게는 람보는 더 없이 멋진 사람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버지 당신께서는 짚차 운전 및 기동계원으로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으셨다고 하셨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잘 기억나지 않으나 분명 전쟁과 전투의 이야기였으며 잠깐 한국군도 복수를 한다고 잔인한 활동을 했다는 점이 언급되긴 한 것 같았다.



아버지의 월남이야기가 계속되면서 어머니가 대화에 참여하시기 시작하였다. 식사 중에는 어울리지 못한 잔인한 이야기라는 판단이셨는지 화제를 돌리기 시작하셨다. 어머니의 월남은 아버지를 향한 핀잔으로부터 시작했다. 돈을 벌려고 월남에 갔으면 돈을 벌어야지 남들처럼 돈도 못 벌었다면서 고지식해서 월급을 제외한 돈은 한 푼도 벌지 못하였다면서 아버지의 나무라기 시작하였다. 어머니는 월남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가난한 집안을 이야기 하고 싶어 하셨을 것이다. 더구나 아버지의 보직이 자동차 운전 및 수리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에 자동차 부품을 내다 팔아도 제법 돈을 벌수 있었을 것이란 판단이셨다.



주위의 소문으로 월남특수도 많이 들었는데 아버지에게는 그런 것 하나 없었으니 더욱 그러하셨다. 아버지도 다른 사람들은 부품도 내다 팔고 기름도 내다 팔아 돈을 제법 번 사람도 있다는 말씀을 하셨지만 원래부터 그런 방면으로 재주가 없는 아버지가 그런 일을 하셨을 것 같지 않았다. 그나마 월남 갔다 와서 고향에 집이라도 지었다면서 고향의 할아버지 집이 아버지 월남 가서 보낸 돈으로 지은 집이라는 말씀으로 월남 특수는 이야기를 끝을 맺었다. 지금도 남아있는 그 집은 스레트 지붕의 방두칸짜리의 시골의 아주 낡은 촌집이다. 매년 겨울 명절 때에 할아버지 댁에 가면 할아버지가 군불을 너무 많이 때어 밤에 잠을 잘 못잘 정도로 바닥은 뜨거웠지만 밤새 창호지문사이로 바람이 솔솔 들어오는 그런 낡은 집이 아버지가 월남에서 보내온 돈으로 지은집이란 것을 그 때 난 처음으로 알았다. 그리고 월남의 마지막 이야기는 월남에 누나, 형님이 있을지 모르니 찾아가 보자란 어머니의 말씀에 아버지의 옅은 웃음으로 어머니의 월남이야기는 끝이 났다.



2001년 여름,

직장에 취직하여 얼마 되지 않은 나는 시민단체 나와우리를 통해서 난 베트남에 갔다. 우리 가족에게 월남은 먼 나라가 아니기에 여름휴가를 베트남으로 간다니 부모님은 무척이나 궁금해 하셨다. 나의 여행목적이 1960년대 한국군에 의해 자행된 베트남 민간인 학살 지역을 방문하기 위해 간다고 하니 아버지께서는 소문으로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고 하시면서 그 어떤 반응도 보이시지 않으셨다. 당시 처음 간 베트남이었지만 거짓말같이 낯설지 않았다. 어질 적 슬라이드 사진 속 기억일 리가 없지만 어색함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은 그런 곳이었다. 그 이후로 난 베트남을 몇 번 왔다 갔다 하면서 우리가족에게 월남은 베트남으로 바뀌었다.



2005년 겨울, 아버지 생신을 맞아 고향 부모님 댁을 방문하였다. 올해는 환갑이라 더욱 의미 있는 날이었지만 직장 퇴직 후 경제적인 이유로 생활비라도 벌기위해 하루도 쉬는 날이 없는 조그만 공장에서 일하시고 계신다. 아버지는 생신 당일도 아침 식사 후 출근을 해야 하는 처지여서 차로 아버지를 일터로 모셔다 드렸다. 차 안에서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사후를 걱정하시며 월남전우회에서 운영하는 공원묘원이 경북 경산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셨다면서 아버지 당신의 묫자리를 그쪽을 알아보시고 계시다는 말씀을 하셨다. 생뚱맞게 환갑 생일을 앞두고 그런 이야기인가 싶었다. 하지만 가난한 집안의 장손이신 당신께서 선산조차 없어 친척들의 묫자리도 항상 마음에 걸렸었든 터이고 장남인 나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으시려 미리부터 이야기 하신 것이라는 생각으로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하지만 문득 1960년대 가난에서 벗어나 살기 위해 찾아간 월남, 2005년 환갑이 되어 죽음을 준비하는 묫자리까지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니 아직도 베트남은 과거의 나라가 아닌 현재의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1960년대의 월남, 2005년의 베트남은 아직도 나와 아버지의 삶에서 지워지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다.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꼭 한번은 아버지와 베트남을 가 볼 계획이다. 그것도 꼭 베트남 중부지역을 함께 방문하고 싶다. 단지 베트남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불행한 일을 겪은 사람들은 다름 아닌 1960년대 아버지와 똑같은 가난한 모습을 한 채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함께 보고 싶다. 아버지에게 월남은 목숨을 담보로 돈을 벌어야만 하는 비장한 땅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편안한 마음으로 월남이 아닌 베트남을 보셨으면 한다. 생존과 죽음을 고민해야 하는 기억속의 월남이 아닌 화해와 평화의 베트남으로 다시 기억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