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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겨레21 베트남전 캠페인] 관련기사 ②
작성일자 2018-08-15

[한겨레21 베트남전 캠페인] 관련기사 ②

어른이 된 어느날 그 공원에서…

*** 지난 397호에 실린 ‘이인호 독자 5만원’을 ‘천안동여중 3학년2반 학생들’로 바로잡습니다. 천안동여중 학생들의 사연과 함께 397호에 7만1120원을 기탁한 수원 산남중학교 1학년1, 6반 학생들의 편지를 싣습니다.

“졸업식날 우는 촌년이 아직 있나요? 천안 동여중 3학년2반입니다. 오늘 졸업식, 저희 하나하나를 꼭 껴안아주시는 담임선생님의 품에서 울고 아이들끼리 서로 붙들고 우느라 차마 떨어지질 못했습니다. 선생님께, 친구들에게 서로 좀더 다정하지 못했던 것이 선생님의 체온에서 갑자기 느껴졌기 때문일까요? 조금씩 모아놓았던 학급비로 소박한 이별잔치를 하고, 지난해 가을 체육대회에서 2등하여 받은 상금 5만원은 따스한 마음이 식기 전에 고스란히 보냅니다. 어른이 된 어느날 그 공원에서 오늘 울며 헤어진 친구들을 만날 수 있겠지요?

저는 반장 mescarin@hanmail.net 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었습니다. 베트남 평화공원조성기금을 모은다는 걸.

저희 수원 산남중학교 1학년1반에서는 10원의 중요성을 알기 위해 학년 초부터 버려지는 10원짜리 돈을 저금통에 모았습니다. 그리고 6반 친구들에게도 이야기했더니 동참을 해왔습니다. 내일은 봄방학입니다. 1학년을 마치며 뜻깊은 일을 하는 것 같아 좋습니다.

수원 산남중 1학년1반, 6반 일동

/ 2002년03월07일 제3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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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24일, 드디어 기공식



<한겨레21> 독자들의 성금모금으로 추진돼온 ‘한-베 평화공원’(Han-Viet Peace Park, 가칭) 기공식이 오는 4월24일 오전 9시 베트남 푸옌성 투이호아현 중호아히엡사 공원 부지에서 열린다. 이날 행사에는 한겨레신문사 최학래 사장, 이수영 출판국장, 정영무 <한겨레21> 편집장, 이한우 평화의료연대 대표 등 15명의 한국 쪽 인사와 푸옌성 다오 탄 록 주석과 응웬 탄 쾅 공산당 서기장, 베트남전 생존자 및 현지 주민 200여명이 참석한다. <한겨레21>은 30일 발간되는 407호에 평화공원 기공식 상보를 실을 예정이다.



/2002년04월17일 제4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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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베 평화공원’이 들어설 곳

 

 







<한겨레21> 독자들의 성금으로 지어지는 베트남 푸옌성 투이호아현 중호아히엡사의 ‘한-베 평화공원’ 부지. 푸옌성 문화통신부에서 이 공원설계 관련 업무를 담당한 쩐 득(36)이 설계도면을 들고 부지를 가리키고 있다. 공원 기공식은 4월24일 한겨레신문사의 최학래 사장과 푸옌성 다오 탄 록 주석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이곳에서 성대하게 열린다.



/2002년04월24일 제4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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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선물한 딸의 돌잔치



안녕하세요.

저는 이제 첫돌을 맞이하는 딸아이 신해원의 엄마 배은선입니다.



보통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면 백일잔치, 돌잔치로 떠들썩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잔치들이 부담이 되어서 돌아오고, 아이를 위한다고는 하지만 다들 어른들이 좋아서 하는 것 같다며 그런 반짝 이벤트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남편의 영향으로 간소하게 가족들만의 식사를 하려고 하는데 못내 섭섭함이 남더라고요.



뭔가 좋은 선물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이 “베트남 평화의 공원과 병원을 짓는데 해원이 앞으로 기부를 하고 잡지에 실린 아이 이름을 액자로 만들면 어떠냐”고 하더라고요. 아이가 좀 크면 엄마와 아빠가 한 일에 대해 설명을 해주면 좋을 듯싶어서 동참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제가 하는 모임에서 제 아기 첫돌이라고 격려금을 주더라고요. 남들처럼 잔치를 한 것도 아니기에 받지 않으려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받았습니다. 저희들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좋은 일에 함께하고 싶어서요….



제 딸아이 해원이에게는 기억에 남는 돌 선물이 되어서 기쁩니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지만 전쟁으로 인한 폐해는 평생을 가고 대를 넘어 잊혀지지 않는 듯싶어요. 우리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됐을 때는 전쟁이 없는 아름다운 세상에서 서로의 가치관을 존중하며 살았으면 하는 부모의 마음을 담아봅니다.



/2002년04월24일 제4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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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의 기쁨을 노래하자"

 

최학래 사장이 <한겨레21>독자들이 모아준 성금을 공원 건립 실무부서인 푸옌성 문화통신 청장 응웬 반 히엔씨에게 증정한 뒤 함께 손을 치켜들었다.





스멀스멀 다가오던 먹구름이 비를 뿌렸다. 하늘에선 포효하듯 천둥까지 쳤다. 쏟아지는 장대비를 보며 사람들은 상쾌함을 만끽하고 있었다. 야외 강변에서 점심을 먹다 자리를 옮기는 번거로움도 상관없었다. 그들 중 한명이 말했다. “이건 오늘 우리들의 만남을 축하해주는 ‘우정의 비’다.”



아침에도 그랬다. 왜 하필 버스가 행사장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빗방울이 떨어졌을까. 그로 인해 예정된 행사는 1시간을 넘겨서 시작해야 했다. 베트남에 체류하던 4일 동안 행사 직전과 직후에만 딱 한번씩 내려준 비. 한달만에 내렸다는 그 비에는 정말 우정을 축하하는 메시지가 담긴 걸까.



감동 증폭시킨 문화적 이벤트



4월24일 아침 7시30분. 한국대표단을 태운 버스는 푸옌성 투이호아현의 한 호텔을 출발했다. 이어 추수하는 들판이 그림처럼 펼쳐진 작은 도로로 들어섰다. 호치민에서 나짱까지 비행기로 1시간. 나짱에서 승합버스로 투이호아현까지 3시간 반. 이제 여기서 중호아히엡사에 있는 행사장까지 40분을 더 가야 한다. 볏단을 실은 우마차와 오토바이가 지나가고, 삿갓을 쓴 농부와 등교하는 꼬마들이 손을 흔들며 사라진다. 30분을 달려 중호아히엡사 입구에 이르자 한국대표단 일행을 반갑게 맞는 거리의 빨간 플래카드. 이곳에 온 목적을 선명하게 말해주는 플래카드. “평화공원 건립을 위한 기공식에 참여해주신 각 대표자 여러분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첫삽을 뜨는 모습. 왼쪽에서 여럿번째가 최 사장. 그 오른쪽이 응웬·탄 쾅 푸옌성 공산당 서기장







한겨레신문사와 푸옌성이 공동주최한 ‘한-베 평화공원’(Han-Viet Peace Park) 기공식은 늦어졌다. 갑자기 내린 비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그 비에 ‘맛이 간’ 음향기계 탓에 30분을 더 끈 뒤 10시쯤 시작됐다. 하지만 기다린 보람은 있었다. 푸옌성 문화예술단 남녀가수들과 무용수들의 다채로운 공연은 이 행사가 단순한 ‘삽질’이 아닌 상대방의 문화를 껴안는 만남이라고 웅변하는 듯했다. 이전에도 한국 정부나 참전군인 관련단체의 여러 공식행사가 베트남 중부5개성(한국군이 베트남전 당시 작전했던 지역으로 쿠앙응아이, 쿠앙남, 푸옌, 빈딘, 칸호아. <한겨레21> 보도 이후 한국 정부는 학교 40개와 종합병원 5개를 짓고 있다)에서 있었지만 이런 화려한 이벤트가 식전행사로 장식된 적은 없었다.



본행사도 대단히 치밀했고 문화적이었다. 푸옌성 소년소녀군악대의 연주는 행사 흐름을 윤기 있게 해주었으며, 프로그램이 바뀔 때마다 그 의미에 적절히 맞게 흘러나온 <미안해요 베트남> 음반의 비감한 선율은 감동을 증폭시켜주기에 충분했다. 한국 쪽 참석자들은 “역시 예술인 출신이 모인 문화통신청 사람들이라 다르다. 감각이 돋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문화통신청의 부청장 응웬 응옥 쾅(45)씨는 자신이 직접 작곡한 평화공원 기념노래 <우정의 기쁨을 노래하자>를 발표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기도 했다.

 

기공식에는 푸옌성 각급 간부들과 베트남전 생존자, 마을 주민·학생 400여명이 자리를 꽉 채웠다. 푸옌성 문화예술단 가수들의 노래공연은 행사에 흥을 돋워주었다.







그러나 한국 대표단이 가장 크게 확인한 것은 푸옌성 쪽의 ‘진심’이었다. <한겨레21>의 베트남전 진실보도와 그로 인해 겪은 갖가지 우여곡절과 사연들이 워낙 알려져 있는 터라, 푸옌성 주민들은 아주 오래된 친구들을 맞는 것처럼 한국대표단을 환영해주었다. 특히 그들은 이곳에서 한국 정부가 추진 중인 학교와 병원 건립도 오로지 <한겨레21>의 진실보도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다. 각 기관의 간부와 베트남전 생존자, 주민·학생 등 400명의 참석자들은 상대적으로 길었던 한겨레신문사 최학래 사장의 인사말을 지루한 표정 없이 진지하게 경청했다. 끝까지 자리를 지킨 그들의 얼굴에서 ‘동원된’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실 이번 기공식은 1주 반 만에 급조된 행사였다. 그럼에도 그 어느 행사보다 가장 성대하게 아무런 무리 없이 진행될 수 있었던 건 실무자들이 진심의 힘으로 열과 성을 다해 준비한 결과였다(사회주의 국가에서 공식행사가 얼마나 번거로운 승인절차 과정을 거치는지, 아는 사람은 안다).



"미국은 이 전쟁 이해 못한다"

 

기공식 행사장 입구에 세워진 빨간 플래카드. 한국대표단을 열렬히 환영한다는 내용이었다.







“지나간 일들은 한켠에 접어두세/ 인간으로 새로 서기 위해 서로 도우세/ 노란 피부, 붉은 피를 가진 이여/ 다함께 아시아의 동반자가 되세/ 수많았던 질곡의 날들을 지나/ 오늘 베트남과 한국 두 나라의 간극을 이어/ 우리 다함께 단결의 노래를 부르세.”



생존자 대표로 인사말을 한 쩐 반 호아(70)씨가 직접 지어 읽은 시다. 그는 “바로 이 지역에서 잔혹한 민간인 학살이 많이 일어났지만 이제 우리는 우애와 선의를 체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최학래 사장이 베트남전 생존자들에게 선물을 증정하고 있다.







그 우애와 선의는 오찬장에서도 이어졌다. 푸옌성 내 권력서열 1위라 할 수 있는 응웬 탄 쾅 푸옌성 공산당 서기장(전 푸옌성 주석)은 한국과 베트남이 베트남전 당시에도 적이자 친구였다고 말했다. “한국군은 상상할 수 없이 험악한 곳에서 작전했다. 모기와 곤충이 우글거리는, 도저히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지역이었다. 베트남 사람들이 봐도,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을 한국군이 행군해왔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 미군들은 잠을 잤다. 그래서 나는 이 전쟁을 이해할 수 있는 건 한국과 베트남뿐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은 절대 이 전쟁을 이해할 수 없다.”

 

행사에 참석한 학생들.







최학래 한겨레신문사 사장은 살아 있는 자는 역사를 증언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일부 참전군인들이 우리 신문사를 습격하고 불질렀다. 그들은 나한테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나는 할 수 없다고 했다. 경찰이 주모자를 체포했다. 나는 풀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들도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는 과거다. 하지만 과거라고 잊고 넘어갈 수는 없는 게 있다. 누군가 말하지 않으면 인류는 반성할 기회를 잃는다.”



두 사람은 건배를 제창했고, 누군가가 베트남어로 소리쳤다. “못짬 번짬!”(원샷!) 응웬 탄 쾅 서기장은 잔을 비우고 말했다. “나는 오늘 한겨레 사람들을 한 사람도 못 만났다. 친구들만 만났다.”

 

덜 알려져 더욱 천연의 모습을 간직한 푸옌성의 관광지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롱 투이 해변, 키로강의 야경, 다디아 절벽. (푸옌성 관광상공청 제공)





2002년05월02일 제4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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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평화NGO 총출동



‘한-베 평화공원’ 기공식은 <한겨레21>을 통해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의혹을 처음으로 보도한 구수정(호치민대 베트남역사학과 박사과정)씨의 사회와 통역으로 진행됐다.



한국 쪽에서는 최학래 사장, 이수영 출판사업본부장, <한겨레21> 정영무 편집장 등 한겨레 쪽 인사와 베트남 관련 평화활동 단체와 모임 대표들이 참석했다. 베트남 중부지방에서 3년째 무료 진료활동을 하는 베트남 평화의료연대 이한우 대표(진주 건강한 치과 원장),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 방현석 대표, 베트남전 진실위원회 김숙경 사무국장, 산은캐피탈(주) 베트남 합작법인 VILC 최재호 사장도 함께해 첫삽을 떴다. 이 밖에도 호치민 현지 유학생 4명이 기공식 일정을 함께했다.



베트남 쪽에서는 응웬 탄 쾅 푸옌성 공산당 서기장과 함께 다오 탄 록 푸옌성 인민위 주석, 응웬 반 히엔 푸옌성 문화통신청장, 응웬 흐 터이 투이호아현 인민위 주석, 쩐반까이 중호아히엡사 인민위 주석이 귀빈석에 나란히 앉았다.



기공식은 식전 문화공연 행사에 이어 개회선언과 대표자 소개, 양쪽 대표와 생존자 대표의 인사말, 성금과 선물증정, 삽질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이 중 민간인 학살 과정에서 살아남은 북·중·남호아히엡사 생존자 60명에 대한 선물은 한겨레신문사 노동조합(위원장 박상진)의 후원으로 이뤄졌다.



2002년05월02일 제4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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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관광지로 거듭나려는 푸옌

 

 







푸옌성은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 3개 전투부대가 모두 거쳐간 격전지였다. 65년 말 맹호부대가 투이호아현에 잠시 주둔했다가 66년 말 백마부대로 교체된 것으로 주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또한 청룡부대도 이곳에서 작전을 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푸옌성 공식집계로는 당시 22건의 민간인 학살 사건이 있었으며 이 과정에서 1729명이 희생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당시 한국군의 활약상에 대한 한 생존자의 증언을 들어보자. “베트콩은 정말 간덩이가 부었어. 용감했지. 근데 베트콩보다 두배로 간덩이가 분 자들이 있었어. 바로 한국군이야. 정말 용감하고 잔학했지.”





전쟁은 끝났다. 푸옌성을 감싸는 건 오직 평화뿐이다. 당시 이곳에서 작전했던 한국군들은 길고 푸근한 바다를 가진 푸옌성에 대해 일말의 그리움을 간직하며 살고 있을까? 푸옌성 주민들은 “그들이 방문한다면 두 손을 들고 환영하겠다”고 말한다. 참전군인 출신들은 정말 이곳에서 청춘 시절의 향수에 젖을 것이다. 한국군들이 남긴 자취가 곳곳에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허물지 않은 잡초투성이 벙커 안에서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자신들의 낙서를 보는 기분은 짠할 것이다.



굳이 참전군인 출신이 아니더라도 좀더 많은 한국인들이 와주길 푸옌성은 바라고 있다. 푸옌성은 2000년부터 관광부문을 중요한 경제부문으로 설정하고 각종 인프라 구축에 나섰다. 푸옌은 후에나 나짱처럼 외국인들에게는 덜 알려져 있지만, 상당한 관광 잠재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인에게는 그저 ‘머나먼 송바강’의 무대인 송바강이 있는 곳쯤으로 알려져 있다(사실은 Song Da로 ‘다강’이 정확한 명칭이다). 마이 탄 타이 푸옌성 관광상공청 부청장은 “푸옌은 베트남에서 가장 생태보존이 잘돼 있는 곳 중의 하나”라며 “베트남 정부가 지정한 명승지가 10곳이나 있다”고 말했다. “198km나 되는 긴 무공해 천연해변, 그리고 희귀 야생동물까지 볼 수 있는 원시림이야말로 푸옌의 자랑이다.”



그는 먼저 ‘한-베 평화공원’ 부지에서 남쪽 20km 부근에 떨어져 있는 붕로(Vung Ro)라는 봉우리를 첫 관광지로 꼽았다. 베트남전 당시 베트콩 근거지였던 이곳은 전쟁의 유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원시림과 바다가 어우러진 모습이 일품이라고 한다. 그래서 주민들이 일출을 구경하러 가장 많이 오는 곳이기도 하다. 멀리서 보면 큰 벌집 같은 형상을 한 다디아(Da Dia) 절벽은 베트남에서 유일하다며 두 번째로 꼽았다. 이 밖에도 그는 소수민족들의 풍습과 원시림이 잘 보존된 ‘잘라이’(Gia Lai)와 ‘닥락’(Dak Lak)으로 가는 길목이 푸옌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먹을거리로는 황제게 등 각종 해산물과 산돼지구이 등 산악지대 특산물이 풍부하다고 한다.



현재 푸옌성 관광의 가장 큰 딜레마는 항공편이다. 예전에 미군이 쓰던 격납고 자리에 군용 비행기가 뜨고 내리지만, 여객편은 수요부족으로 끊긴 지 오래다. 마이 탄 타이 부청장은 “항공편 복구를 신청해놓았다”며 “공업지구 신설로 수요가 늘어나 올해 안에 베트남항공 국내선이 들어올 것”이라고 낙관했다(평화공원은 비행장에서 5분 거리다). 이 밖에도 그는 외국 관광객 유치를 위해 도로 복구와 비치 개발, 호텔 증설에 힘을 쏟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한국의 충청북도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푸옌성은 한국 기업들의 관광 인프라 사업개발 투자 유치를 희망하고 있다(관광문의 8457-826459, 투자문의 8457-823400).



/2002년05월02일 제4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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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병원, 그리고 평화공원…

 

가로세로 95m 가량인 평화공원의 설계도. 산책로를 원형으로 만들어 정감을 살렸다(맨위). 위는 아치형으로 세워질 정문.







4월24일 ‘한-베 평화공원’(Han-Viet Peace Park) 기공식이 열림으로써 99년 10월부터 시작된 <한겨레21>의 베트남 캠페인은 첫 결실을 맺었다. 이 평화공원의 재원은 캠페인 기간에 모은 독자들의 성금이다. <한겨레21>은 푸옌성 방문 직전인 4월19일 베트남상공은행을 통해 10만100달러(4월16일 환율기준 우리돈 1억3158만1450만원)를 송금했다. 오는 9월 완공 때까지 모금되는 금액은 추가 재원으로 쓰일 예정이다.



<한겨레21>은 애초 학교와 병원 건립을 추진했으나 돈이 너무 많이 들고 한국 정부가 학교와 병원을 짓기로 해 ‘평화공원’으로 계획을 바꿨다. 이에 앞서 푸옌성은 지난 3월25일 한국대사관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학교 기공식을 열었다. 푸옌(8개)·빈딘(10개)·칸호아(2개) 등 3개성에 동시에 지어지는 20개 학교의 기공식을 푸옌성에서 대표로 한 것이다. 푸옌성은 종합병원 건립에 관해서도 한국 정부 쪽의 확약을 받았다고 밝혔다.



중호아히엡사에 들어설 예정인 ‘한-베 평화공원’은 총면적 8500㎡로 주민들의 휴식공간과 산책로로 이용될 나무그늘과 잔디밭, 인공호수가 조성된다. 공원부지로부터 북쪽으로 100m가량 떨어진 곳에는 현재 20여개 이상의 국내외 투자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호아히엡 공업지구’가 가동을 준비하고 있다. 푸옌성은 이 공업지구에 고용될 노동자들의 주거단지를 평화공원 옆에 계획하고 있다. 더불어 중·고등학교 1곳도 내년에 건립한다. 푸옌성의 한 관계자는 평화공원 계획이 공업지구 개발계획과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평화공원은 공업지구에서 발생하는 먼지와 오염을 정화시킬 뿐 아니라, 공업지구 노동자들의 안식처로도 활용되는 셈이다.

 

평화를 상징하게 될 조형물.







공원 안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조형물과 <한겨레21> 독자들의 성금운동을 기념하는 ‘진실과 우정의 돌’이 세워진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베트남전 진실위’가 위안부 할머니의 성금으로 추진 중인 ‘평화역사관’이 들어선다. 조형물은 두 손이 지구본을 든 형상으로 4m 높이며, 한글과 베트남어로 새겨질 ‘진실과 우정의 돌’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쓰인다. “전쟁의 진실에 놀라고 가슴아파한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의 독자들이 이 공원의 주춧돌을 세웠다. 평화를 사랑해온 푸옌성의 인민들은 아름다운 공원을 위하여 땀흘려 일했다. 진실한 우정이여 영원하라! 한겨레신문사, 대한민국.”



/2002년05월02일 제4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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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그리고 미래



‘한-베 평화공원’ 기공식에 부쳐 



우리는 왜 그토록 피를 흘린 전쟁을 통해 배운 게 너무 적은가



9·11 테러사태 이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나 최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을 보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기억’이라는 말이었다. 그런 행동이 사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도 무자비한 복수극을 단행한 것은 그들 스스로 다른 중요한 가치들을 이미 포기했다는 뜻이다. 그들은 타자에 대한 고려를 포기했다. 존 웨인식 합리주의가 절대적 가치가 아닐 수 있다는 데 대해 한번 더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최첨단 미사일은 그곳 주민들의 귀중한 생명은 물론 그들이 수천년 동안 지켜온 아름답고 혹은 슬픈 삶의 기억들도 동시에 박살내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부시와 샤론은 인디언 학살과 아우슈비츠의 기억마저 깡그리 잊어버렸다.



고엽제보다 더 치명적인 후유증

 

우리는 그 전쟁의 한 가해자였다는 사실을 너무나 쉽게 잊었다. '한-베 평화공원' 기공식 현장에서 <한겨레21> 구수정 통신원을 환영하는 한 생존자 할머니.







현재 베트남에서는 김혜수라든지 장동건, 이병헌 등 한국의 연예인들이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다. 사람들은 저녁마다 그들이 나오는 드라마를 보기 위해 텔레비전 앞에 모여들고, 길거리 가판대에서는 그들의 브로마이드가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베트남 최대의 도시 호치민에서 시민들이 제일 가고 싶어하는 백화점과 수도 하노이에서 제일 크고 좋은 호텔도 한국 것이다. 학생들에게 대학의 한국어과는 선망의 대상이다.



그러나 한국이 이처럼 화려한 이미지만으로 존재한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베트남 현지에서 노동문제를 제일 많이 발생시키는 외국 기업 속에 한국 기업도 들어가는데, 한 신발공장의 한국인 여자 기술자가 신발로 여성 노동자 열다섯명의 뺨을 때린 사건이 발생해서 충격을 던져주기도 했다. 코리안드림을 좇아 한국에 온 베트남인 노동자들은 수없이 많다. 그들이 처음 와서 배우는 우리말 교재에는 “사장님, 때리지 말고 말로 하세요”라든지 “왜 밀린 월급을 주지 않나요?” 같은, 정말이지 생활에 필요한 ‘일상회화’가 가득하다.



‘증산, 수출, 건설’만이 최상의 가치였던 지난 시절, 마산수출지역에서 외국인 관리자의 구타와 모멸을 견디며 눈물밥을 먹던 노동자는 이제 없다. 그런데 기억이 사라진 순간, 남는 것은 무엇일까.



베트남전쟁은 수십년 전에 끝났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그렇듯 그 전쟁 역시 완전히 끝난 게 아니다. 그것은 한국인에게 치명적인 후유증을 남겼다. 오늘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된 게 베트남전쟁에서 흘린 피의 대가라는 말, 믿는다. 낯선 밀림 속에서 죽은 이들. 그들의 가족들. 지금도 새벽같이 보훈병원에 다니며 접수 순서를 기다리는 상이용사들. 정부도 미국도 나 몰라라 하는 고엽제 때문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냉수 한 사발을 벌컥 들이켜는 사람들…. 그렇지만 그보다 더 치명적인 후유증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그토록 많은 피를 흘린 그 전쟁을 통해 배운 게 너무 적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결코 원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우리가 그 전쟁의 한 가해자였다는 사실을 너무나 쉽게 잊었다. 그 가해의 상처가 지금 이 땅에서 참전용사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 못지않을 텐데도 불구하고. 100명의 베트콩을 놓치더라도 한명의 양민을 보호하라고 했다는 전시 명령, 믿고 싶다. 그러니 그 명령이 그 당시 현지에서 어떻게 이행되었는지 진위 여부를 가려야 한다.



너도 빨갱이냐?



지지난해 연말, 베트남 민간인 학살 의혹에 대한 심포지엄이 열렸다. 강당을 가득 메운 군복 차림의 참전용사들은 발제자들의 입에서 “학살”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고함을 토해냈다. “너희들이 전쟁을 알아?” “너, 빨갱이 아냐?” 함께 참석한 내 동료가 고함소리에 놀라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얼룩무늬 군복의 한 노병이 대뜸 호통을 쳤다. “뭐야? 너도 빨갱이야?”



베트남에 평화공원을 세우고 그 안에 평화역사관도 건립한다. 그것이 베트남인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위무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상처까지 쉽게 위무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상처를 덧나게 할지도 모른다. 모처럼 한류열풍이 분 베트남에서 왜 또다시 아픈 기억을 들추어내냐고 볼멘 목소리도 들려올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거기에 우리의 기억을 남김 없이 전시해야 한다.



왜냐하면… 기억만이 진정한 미래를 약속하기 때문이다.



/2002년05월02일 제40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