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제목 <2015 평화기행>보 티 싸우의 꽃은 평화를 염원하며 꽃을 피운다
작성일자 2018-08-17




<2015 평화기행>보 티 싸우의 꽃은 평화를 염원하며 꽃을 피운다







<호치민시 전쟁증적박물관>

미국은 베트남과의 전쟁에 7,200만 리터의 화학무기를 쏟아부었다. 그중 170kg의 다이옥신이 포함된 에이전트 오렌지(고엽제)가 4,400만리터다. 85g의 다이옥신은 인구 8백만 도시의 생명을 죽일 수 있는 양이다.

1월 30일 평화박물관 베트남 평화기행단이 도착한 호치민시는 종전 40주년을 앞두고 축제분위기로 술렁인다. 설을 앞두고 있기도 하여서 그런지 도시가 예쁜 장식을 둘렀다. 호치민시전쟁증적박물관은 전쟁을 두루 살펴보기 위해 꼭 들러야하는 곳이다. 종전기념이 다가와서였는지 전쟁사진 기획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일본 사진가 Taizo Ichinose의 사진으로 에이전트 오렌지의 비극을 만났다.

사진 하나는 10개월 아들 '하'를 소중히 안고있는 엄마 레띠따이(25). 레띠따이는 12세에 고엽제 피해를 입었다. 고엽제가 훑고 간 맹그로브 숲에 서 있는 7세 '헝'. 숲에는 더이상 새소리도 생명도 없다. 전쟁 후 40년 지난 베트남2015 여전히 에이전트 오렌지의 재앙은 진행중이다.













<후에와 자금성>

응우옌 왕조의 수도 후에. 뜨득황제는 36년간 황위를 지켰으나 재임 중 프랑스 침략으로 3개 성을 양도하고, 왕위를 두고 불만에 찬 형의 자살로 친형을 죽인 왕으로 곤혹을 당하고, 오랜 재임기간에도 후손이 없어 슬픔이 많은 왕이다. 뜨득황제릉은 왕의 우울과 슬픔을 담고, 모든 공간마다 '겸양할 겸'을 넣어 자신을 낮춘다. 스스로 자신의 공적비를 만들되, '공'을 적고 또 '과'를 적으니 마무리는 말줄임표 '... ' 그 뜻은 후세가 나를 평가하리라는 '겸'의 자세이다.

여름에 꽃이 피는 나무 '쓰으'는 사당이나 제를 올리는 곳에 심는다. 뜨득황릉과 베트남 왕조의 마지막 황성에서 '쓰으'를 만났다. 14살 베트콩 연락병에 지원한 보티싸우는 정치범으로 꼰다오 감옥에 수감되어 19살 '쓰으'꽃을 머리에 꽂고 사형대에 오른다. 그 향이 강하다는 쓰으꽃-아마도 히아신스 종류-은 그 후 베트남에서 평화를 상징하는 꽃이 되었다.

담벼락마다 '쓰으'가 서있는 후에 자금성은 미군과 북베트남군 남베트남군 전투로 폐허가 되었다. 전쟁이 빗겨가지 않은 황릉과 자금성... 그안에 자라는 보티싸우의 꽃은 평화를 염원하며 꽃을 피운다.











<하미 위령비>

하미땅은 모래다. 68년 학살이 일어난 그때 모래땅에 사는 하미 사람들은 가난했다. 전략촌에서 살 수 없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그 모래땅에 다시 뿌리를 박고 살았다. 그리고 가난한 그들에게 학살이 일어났다. 한국군 청룡부대에 민간인 135명이 희생됐다.

학살이 일어난 그날, 하미사람들은 따이안 제사를 지낸다. 평화박물관은 2013년 위령제에 함께하고 이후 매년 제사비용으로 함께해 왔다. 따이안 제사 때는 큰무당을 모시고, 돼지도 잡고, 마을주민 모두가 음복을 한다.

우리를 맞이해 준 디엔증싸 지도자는 비용이 많이 들어 제사를 몇 년에 한 번 지냈는데, 우리의 후원으로 매년 지낼 수 있게 되었다며 인사를 건넨다. 한국군에 슬픔을 당했지만 우리의 방문이 반갑고 앞으로도 계속 찾아주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꽝아이성 빈호아사>

평화기행은 매년 빈호아의 아이들을 만나러 간다. 아이들의 꿈이 무럭무럭 자라 수 있게 장학금으로 작은 정성을 보탠다. 빈호아사 인근에 사는 400명의 아이들이 이 학교에 다닌다. 교실이 부족해 교대로 공부하느라 하루 2-3시간밖에 수업이 없다. 우리가 찾아간 시간은 마침 아이들의 하교 시간이다.

한국군 증오비와 학살의 기억을 자장가로 부르는 마을 빈호아사. 증오비는 희생된 430명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230명이 여성이었고, 109명이 노인이고, 182명이 아이들이었다. 그 중 7명은 임신부, 2명은 산채로 불태워지고, 80세 노인은 목이 잘려 들판에 널어놓았으며 한 명은 배가 갈라지고 두 명의 여성은 윤간을 당했고, 두 가족은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하고 몰살당했다.

"하늘에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

빈호아의 아이들은 마을의 기억을 배우고 자란다.









<퐁니 위령비>

겨울 베트남은 꽃이 좋다. 평화기행 참가자인 꽁지머리 예술가가 퐁니위령비 옆 당산나무 수풀 속 꽃과 풀을 엮어 제단에 바친다.

1968년 2월 12일 한국군 청룡부대 퐁니학살, 모두 민간인, 대부분 노인, 여성과 아이들이었던 희생자 74명. 수많은'THI'(여성)와 무명의 아기들, 희생자 모두에게 꽃을 바친다.

향을 피우고, 절을 올리고, 위령비 주변을 정리하며 풀을 뽑는다. 한국 청년들이 터를 닦고, 위령비를 세우니, 베트남 주민은 지붕을 올려 비바람을 막고, 참배하는 이들을 위해 길을 내고 야자수로 그늘을 만든다. 우리는 희생자 넋을 위로하며 풀을 뽑고, 퐁니 주민들은 위령비를 찾는 우리를 맞이하며 풀을 뽑는다. 위령비 옆 당산나무 아래서.











고통과 기억의 연대|평화박물관